전시 식민지경제와 조선방적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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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1-02 06:5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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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라서 1947년 “조선방적협회”의 설립과 함께 본격화되었으며, 1950년 초에 이르러 완료된 미설치 설비의 재건정비의 reality(실태) 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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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직후, 한국방적업의 생산설비는 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25만추, 직기8640대이고 미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8만추, 직기 969대로서 19...
전시 식민지경제와 조선방적업
다. 설비증설의 reality(실태) 는 ‘조선4대방’ 47%, ‘신흥6대방’이 55%을 각각 점유함으로서 설비증설은 ‘신흥6대방=전시6대방’에 의해 주도되었다.
다음으로 직포부문에서는 1947년 대구방직의 408대를 스타트으로 50년 초까지 합계 435대의 설비증설이 행해져 총설비 규모는 9075대였다. 이와 같은 설비 증설 분은 1945년 설비규모의 5%로 47년 이후 혼란과 화재에 의한 파손 철거 및 설비마모와 부품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의도적인 해체에 의한 감소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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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직후, 한국방적업의 생산설비는 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25만추, 직기8640대이고 미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8만추, 직기 969대로서 19... , 전시 식민지경제와 조선방적업경영경제레포트 ,
해방직후, 한국방적업의 생산설비는 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25만추, 직기8640대이고 미설치설비로서 정방기 약 8만추, 직기 969대로서 1937년에 비교하여 정방기 38%, 직기 20%가 증가하였으며, 동 설비증가는 거의 1940년대에 집중하였다. 증설설비의 75%는 ‘신흥6대방=전시6대방’이 주도하였다.
먼저, 방적부문에서는 1947년 경성방직의 46만추를 스타트으로 1950년 초까지 합계12만 7476추의 설비증설로 총설비 규모는 31만6572추였다.